2009년 10월 04일
사랑하라, 사유하라, 일하듯이
데카르트의 코기토의 핵심은 사유하고 회의하는 인간이다. 그 코기토를 회색빛 뇌피질의 세계로 규명한 것이 현대 과학이고, 그 코기토의 근원을 성기로 보게 한 것이 프로이트의 혁명이었다. 사유보다 행동을 설파한 이가 맋스였고, 사유의 정신사적 전망을 제시하려 한 것이 헤겔이었다. 니체는 인간을 넘어가야 할 다리라고 보았다. 이 모든 근대의 아버지들은 죽음보다 무시무시한 시대를 예시했고, 2차대전은 그러한 물질과 정신의 극단적 파괴를 증명해 냈다. 적어도 아도르노의 말대로 아우슈비츠이후의 철학은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를 관통하는 또하나의 조류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적어도 프랑스혁명의 줄기를 따라 생성된 68혁명과 그 시대의 시대적 조류는 (히피즘이나 정신분석학) 우리에게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사랑이 가진 의미를 되세기게 만들었다. 메를로-뽕띠의 말대로 우리의 육체는 보이는 것들의 세계속에 있다. 그러나 그 육체는 사유를 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지니게 되었다. 사랑은 사유와 감각의 중간 지점에 있다. 사랑은 육체에서 파동을 일으키고 정신에서 개념으로 구체화 된다.
낭만주의와 근대의 시인들은 모두 사랑을 개별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시인들은 사랑의 무게를 이야기 한다. 나의 너에 대한 사랑은 사실 나와 너의 사건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혁명의 작은 뿌리들이고 형성해갈 이야기들의 한 실타래이다. 한 개인의 사랑이 인륜의 시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한 개인의 사랑이 얼마나 사회적이며 역사적이며 문화적인가를 이제 우리는 이야기하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설파하듯 에로스와 아나케 (필연성)는 상충되면서도 같이 가게 된다. 인간의 사랑은 필연성의 영역에 속한 일하고 생활하고 활동하는 인간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낭만적 사랑은 사실 도시 속의 한 행위들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사랑은 일과 여가의 과정중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사랑은 순수하게 육체적인 휴식과 일의 세계에 속하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은 늘 사유하는 자신과 감각하는 자신과 일하는 자신 속에서 형성되고 이루어진다. 섹스 앤 시티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주인공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일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은 후기 근대가 낳은 인류학적 지평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나케와 에로스 중간의 사랑을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우리의 몸은 일하고 사유하고 휴식핟록 되어 있다. 우리는 순수한 의미에서 기계이며, 기계는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 생산을 하고 재생산을 한다. 일하는 육체와 사랑은 떨어질 수 없다. 근대 이후의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잊지 말자. 사랑은 여가와 예술적 재생산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점을. 적어도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사랑하라. 창조하듯이.
그러나 근대를 관통하는 또하나의 조류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다. 적어도 프랑스혁명의 줄기를 따라 생성된 68혁명과 그 시대의 시대적 조류는 (히피즘이나 정신분석학) 우리에게 우리의 육체와 정신의 사랑이 가진 의미를 되세기게 만들었다. 메를로-뽕띠의 말대로 우리의 육체는 보이는 것들의 세계속에 있다. 그러나 그 육체는 사유를 하며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지니게 되었다. 사랑은 사유와 감각의 중간 지점에 있다. 사랑은 육체에서 파동을 일으키고 정신에서 개념으로 구체화 된다.
낭만주의와 근대의 시인들은 모두 사랑을 개별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시인들은 사랑의 무게를 이야기 한다. 나의 너에 대한 사랑은 사실 나와 너의 사건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혁명의 작은 뿌리들이고 형성해갈 이야기들의 한 실타래이다. 한 개인의 사랑이 인륜의 시초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한 개인의 사랑이 얼마나 사회적이며 역사적이며 문화적인가를 이제 우리는 이야기하게 되었다.
프로이트가 설파하듯 에로스와 아나케 (필연성)는 상충되면서도 같이 가게 된다. 인간의 사랑은 필연성의 영역에 속한 일하고 생활하고 활동하는 인간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낭만적 사랑은 사실 도시 속의 한 행위들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사랑은 일과 여가의 과정중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사랑은 순수하게 육체적인 휴식과 일의 세계에 속하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은 늘 사유하는 자신과 감각하는 자신과 일하는 자신 속에서 형성되고 이루어진다. 섹스 앤 시티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주인공들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일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은 후기 근대가 낳은 인류학적 지평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나케와 에로스 중간의 사랑을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우리의 몸은 일하고 사유하고 휴식핟록 되어 있다. 우리는 순수한 의미에서 기계이며, 기계는 사랑이라는 행위를 통해 생산을 하고 재생산을 한다. 일하는 육체와 사랑은 떨어질 수 없다. 근대 이후의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잊지 말자. 사랑은 여가와 예술적 재생산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점을. 적어도 사랑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사랑하라. 창조하듯이.
# by | 2009/10/04 20:55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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