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22일
나는 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는가?
이전에 러셀의 글을 인용하며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다시 한번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믿고, 이제는 선교를 하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박사과정을 끝내고 있는 선배를 만나 식사를 했습니다. 선배는 나에게 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냐며 힐난을 했고, 저는 '종교는 윤리'의 선에서 이해할 뿐, 이해가 아닌 믿음의 체계로 저를 강요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끝없이 하나님의 법은 세속의 법보다 우위에 있다는 선배의 말에, 저는 참지 못하고 (저의 불찰이지만) 칼빈의 이론이 잘못되었음을 말하게 되었고, 곧 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논의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기 때문이였습니다.) 약간 썰렁해진 분위기를 다시 고치고 저는 도서관으로 돌아가면서, 우리 사회에 긷들인 '선민사상'과 '기복사상'이 얼마나 만연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오게 되면 대부분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교회라는 것이 공동체의 대리 역할을 하는 강력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가장 많은 목사 유학생을 지닌 대한민국은 가장 활발히 유학생 교인화에 돌입하게 됩니다. 생활에 필요한 각종 일들을 도와주면서, 매주 나가다 보면,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심신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교회는 유학생들에게 마음과 몸의 안식처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도움은, 전도와 연결되게 됩니다. 매일 바이블 스터디를 하고, 유학생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 그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는 또한 그러한 교회의 전도가 마치 고객을 늘리는 회사의 방침과 같아서 두 번쯤 어쩔 수 없이 가고는 절대로 가지 않습니다.
유학생활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체로 산다는 것은 여러가지 제약을 가지게 되지만,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에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구조에 대한 반발감이 있었습니다. 유학생들에게 교회가 하나의 도피처와 안식처가 되는 것은 좋지만, 결국 그 유학생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을 때, 기독교가 그 세를 늘리는 형식과도 연결이 되게 됩니다. 결국 교회는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고, 사회에서 권력층의 종교가 됨으로써, 그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 자명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칼빈의 교리가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기독교를 믿고 천국에 가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아무리 올바른 생활을 해도 지옥에 간다는 칼빈의 해석은 이전의 천주교의 해석을 뒤집는 것이였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영혼도 회개와 윤리적 행위를 통해, 그리고 연옥에서의 고통을 통해 정화될 수 있다는 천주교의 교리가 일종의 죄사함의 사업으로 이어짐에 반대한 칼빈은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알 수 없으며, 결국 그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구원 받을 이들은 정해져 있다는 가장 강력한 선민주의를 부추기게 되고, 선민주의에 목마른 지배계층의 이념이 되었으며, 근면과 노동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와 가장 친밀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결국 근대 자본주의와 칼빈주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보여주듯 긴밀히 연결되게 되었고, 자본주의의 총아인 미국의 국가적 이념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민주의는 최근의 소망교회의 사건에서 보이듯이 신정일치의 사회에 대한 노력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기반이 되는 기독교는 대한민국 전체의 복음화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정치권력화 시키려는 의도로까지 연결되게 되며, 기독교를 일종의 정치이념화 시키게 됩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수많은 번역을 통해 그 내용의 진위를 해석학적으로 가릴 수 없게 된 성경은 글자 한자 틀리지 않은 무오류이며, 기독교인들은 늘 세속의 윤리를 넘은 하나님의 윤리로 승리하게 됩니다. 수많은 탈세와 부정된 재산 축적에도 장관들이 얼굴을 붉히지 않고, 스스로를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는, 바로 이러한 썩은 정치화된 기독교의 윤리가 숨어있게 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종교 단체는 이익단체입니다. 그러한 이익단체가 모든 법과 질서를 넘어서, 지옥에 떨어질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 않고, 자신들과 회개한 자들만 천국에 간다는 생각을 지니고, 통성과 방언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도, 이랜드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해 '노력하지 않은 너희들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만 할 때,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는 천박한 선민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됩니다. 더구나, 이러한 기독교가 세례 받지 못한 조상들은 모두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둥, 북한을 선교하지 않으면 통일도 의미가 없다는 둥, 선진화된 기독교국가인 미국을 이스라엘로 생각하자는 둥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한, 이성을 지닌 국민들은 반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이용해 일종의 계급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급과 그 반대의 다수의 계급이 존재하는 한, 그들 역시 절대로 이 사회를 자신들 마음처럼 지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발, 자신들은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위선의 탈이나 벗었으면 하는 것이, 이명박을 비롯한 그들에 대한 저의 소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그러한 그들이 유치하게 생각한다는 세속의 이유로, 저는 윤리적 인간은 될 지언정,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유학을 오게 되면 대부분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교회라는 것이 공동체의 대리 역할을 하는 강력한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가장 많은 목사 유학생을 지닌 대한민국은 가장 활발히 유학생 교인화에 돌입하게 됩니다. 생활에 필요한 각종 일들을 도와주면서, 매주 나가다 보면,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심신의 고단함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교회는 유학생들에게 마음과 몸의 안식처로서 기능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도움은, 전도와 연결되게 됩니다. 매일 바이블 스터디를 하고, 유학생들에게 예수의 가르침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 그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는 또한 그러한 교회의 전도가 마치 고객을 늘리는 회사의 방침과 같아서 두 번쯤 어쩔 수 없이 가고는 절대로 가지 않습니다.
유학생활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체로 산다는 것은 여러가지 제약을 가지게 되지만, 제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에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구조에 대한 반발감이 있었습니다. 유학생들에게 교회가 하나의 도피처와 안식처가 되는 것은 좋지만, 결국 그 유학생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을 때, 기독교가 그 세를 늘리는 형식과도 연결이 되게 됩니다. 결국 교회는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고, 사회에서 권력층의 종교가 됨으로써, 그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 자명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칼빈의 교리가 있습니다. 선택받은 자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기독교를 믿고 천국에 가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아무리 올바른 생활을 해도 지옥에 간다는 칼빈의 해석은 이전의 천주교의 해석을 뒤집는 것이였습니다. 아무리 더러운 영혼도 회개와 윤리적 행위를 통해, 그리고 연옥에서의 고통을 통해 정화될 수 있다는 천주교의 교리가 일종의 죄사함의 사업으로 이어짐에 반대한 칼빈은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알 수 없으며, 결국 그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구원 받을 이들은 정해져 있다는 가장 강력한 선민주의를 부추기게 되고, 선민주의에 목마른 지배계층의 이념이 되었으며, 근면과 노동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와 가장 친밀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결국 근대 자본주의와 칼빈주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라는 책에서 보여주듯 긴밀히 연결되게 되었고, 자본주의의 총아인 미국의 국가적 이념이 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민주의는 최근의 소망교회의 사건에서 보이듯이 신정일치의 사회에 대한 노력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이명박 정권의 가장 큰 기반이 되는 기독교는 대한민국 전체의 복음화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정치권력화 시키려는 의도로까지 연결되게 되며, 기독교를 일종의 정치이념화 시키게 됩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수많은 번역을 통해 그 내용의 진위를 해석학적으로 가릴 수 없게 된 성경은 글자 한자 틀리지 않은 무오류이며, 기독교인들은 늘 세속의 윤리를 넘은 하나님의 윤리로 승리하게 됩니다. 수많은 탈세와 부정된 재산 축적에도 장관들이 얼굴을 붉히지 않고, 스스로를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는, 바로 이러한 썩은 정치화된 기독교의 윤리가 숨어있게 됩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종교 단체는 이익단체입니다. 그러한 이익단체가 모든 법과 질서를 넘어서, 지옥에 떨어질 다른 사람들과 화합하지 않고, 자신들과 회개한 자들만 천국에 간다는 생각을 지니고, 통성과 방언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도, 이랜드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해 '노력하지 않은 너희들은 먹을 자격도 없다'는 말만 할 때,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는 천박한 선민주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됩니다. 더구나, 이러한 기독교가 세례 받지 못한 조상들은 모두 지옥에 가 있을 것이라는 둥, 북한을 선교하지 않으면 통일도 의미가 없다는 둥, 선진화된 기독교국가인 미국을 이스라엘로 생각하자는 둥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한, 이성을 지닌 국민들은 반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이용해 일종의 계급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급과 그 반대의 다수의 계급이 존재하는 한, 그들 역시 절대로 이 사회를 자신들 마음처럼 지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발, 자신들은 윤리적으로 우월하다는 위선의 탈이나 벗었으면 하는 것이, 이명박을 비롯한 그들에 대한 저의 소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그러한 그들이 유치하게 생각한다는 세속의 이유로, 저는 윤리적 인간은 될 지언정,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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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3/22 14:53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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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기독교인 그리고 기독교 자체가 전혀 다른 개념이며,
그 괴리가 죽음과 삶 정도로 큰 상황에서 비 기독교인이 기독교 자체를 접할 가능성은 차단되고, 단지 교회와 기독교인을 접해야만 하는 현실의 비극인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러한 실제 신과 현실 종교의 괴리가 극심해 질때 독일어 번역 성경이 보급되었던 것처럼, 예수와 신을 팔아 장사해 먹는 인간들에게도 그 값이 돌아갈 시기가 가깝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칼빈의 주장 중에서 그 선민 사상이라는 것을 이런 각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도의 대상이 되고, 기독교의 교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윤리개념 이상으로 믿을 수 없는 사람과, 모름에도 믿을 수 있는 사람...
아마 너무나 전도에 치중한 나머지 스스로의 반성에는 헤픈 기독교의 아픈 단면을 실제로 체험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아픈 단면을 겪은 이후에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때 그들도 좀 더 나은 종교인이 되겠지요.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그 기독교라는 종교를 자기 입맛에 맞춰서 좋은 부분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말입니다.^^;;
그들이 낳는 수많은 폭력은 결코 종교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으며, 종교 온건주의자들은 그 원인을 적당한 이성적 타협으로 포장할 뿐입니다. 개인이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성경의 수많은 폭력적인 오류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위험천만하고, 우리가 그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이성을 부분적으로 마비시켜야 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들립니다.
언제가 되어야 사람들이 영적 꺠달음을 위해 이성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게 되려나 모르겠습니다.
다시말해 기독교가 없었더라도 인류의 비극은 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을 거라는 말이지요.
그 모든 책임을 종교로 돌리는 것 자체가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대부분의 종교전쟁의 본질을 살펴보면 그것을 이용한 인간의 권력욕이 문제였지.(예를 들어 종교를 이용한 불순한 의도의 의식 장악과 지배체제)
종교자체가 문제라는 것 역시 비논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현시대의 종교가 가지는 모순에 대해서 각성을 촉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만 종교 자체를 뭉개는 것은 신학 또는 종교에 관련된 학문적 영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단순히 내가 싫으니까, 내가 좋으니까의 원초적인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성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되지 않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