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4일
대중의 입맛이 법이다-심형래씨의 발언에 대해
최근에 심형래 감독은 또다시 사회적 파장을 부를 만한 발언을 한 것 같다. 그의 발언이 흥미로운 것은 그가 언급한 박수친 사람들과 박수를 치지 않은 사람들이란 이분법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영화는 예술의 한 분야라는 틀거리에서 대중오락산업, 혹은 대중문화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은 아도르노가 60년에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해진 양태이다. 벌써 수백년전에 칸트는 이러한 모순을 짐작하고 있었다. "예술작품은 개념에서 벗어난다"라는 그의 명제는 결국 보편적인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이 존재하는지, 혹은 정해진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그의 모순적 태도를 보여준 예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예술작품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 예술작품은 개별적이며, 무관심성의 영역에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꿈에 불과하며, 아도르노가 지적하듯이 문화산업으로 전락한 영화는 현실과 자본에 매개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분명 숙명일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도 지적하듯이, 이러한 문화산업으로서의 영화는 사회의 혁명성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매체임에도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의 미적 발달은 그 역사가 꽤 깊어지고 있다. 장 뤽 고다르나 파르빈느등의 영화들에서 끝없는 실험을 거친 영화문법은 영화가 왜 자본의 하인이면서도, 가장 예술적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잘 지적했듯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정형화된 영화문법은 결국 예술로서의 영화의 몰락을 부를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엄청난 자본을 먹는 기계가 된 영화는 그 자본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할 경우 퇴출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영화들이 그 존립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모순 때문이다.
어느 측면에서, 심형래를 지지하는 이들이나 심형래의 말은 옳다. 어차피 오락산업의 하나인 영화에 무슨 의미를 그렇게 부여하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미국도 그 정도 수준의 영화는 늘 만들어오지 않았느냐는 논리를 펴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영화가 상업화 되면 될수록, 헐리우드의 논리에 충실해지면 질수록, 할리우드에 먹히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뤽벡송의 영화는 스스로 더욱 할리우드화 되면서 더욱 프랑스 영화를 망치게 되었다. 심형래 감독이 정말 세계적인 감독이 되고 싶었다면, 차라리 국내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가 영화제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또다른 마케팅의 소산일 것이라 예측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방향은 결국 한국영화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대작영화, 대박영화, 특수효과만을 강조한 영화, 자본으로 승부하는 영화는 양이나 질에서 결국 할리우드영화에 밀리게 되고, 스스로의 색깔을 잃어버리게 된다. 차라리, 영화라는 것의 생존이유를 알려주는 독특한 영화, 저자본 영화들이 많이 살아남을수록 제3세계 영화시장은 더욱 건전해질 수 있다. 영화가 천민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에 발 맞춰 갈 수록, 영화는 예술이라는 장르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비평가들이 디워를 모질게 비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감 때문이다. 돈먹는 공룡이 된 이러한 영화들이 결국 우리나라 영화판을 몰살시킬 것이 틀림없이 때문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예술작품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 예술작품은 개별적이며, 무관심성의 영역에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꿈에 불과하며, 아도르노가 지적하듯이 문화산업으로 전락한 영화는 현실과 자본에 매개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분명 숙명일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도 지적하듯이, 이러한 문화산업으로서의 영화는 사회의 혁명성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매체임에도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의 미적 발달은 그 역사가 꽤 깊어지고 있다. 장 뤽 고다르나 파르빈느등의 영화들에서 끝없는 실험을 거친 영화문법은 영화가 왜 자본의 하인이면서도, 가장 예술적 가치를 드높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게 되었다.
그러나, 아도르노가 잘 지적했듯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정형화된 영화문법은 결국 예술로서의 영화의 몰락을 부를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엄청난 자본을 먹는 기계가 된 영화는 그 자본만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할 경우 퇴출되기 때문이다. 유럽의 영화들이 그 존립자체가 흔들리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모순 때문이다.
어느 측면에서, 심형래를 지지하는 이들이나 심형래의 말은 옳다. 어차피 오락산업의 하나인 영화에 무슨 의미를 그렇게 부여하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미국도 그 정도 수준의 영화는 늘 만들어오지 않았느냐는 논리를 펴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영화가 상업화 되면 될수록, 헐리우드의 논리에 충실해지면 질수록, 할리우드에 먹히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뤽벡송의 영화는 스스로 더욱 할리우드화 되면서 더욱 프랑스 영화를 망치게 되었다. 심형래 감독이 정말 세계적인 감독이 되고 싶었다면, 차라리 국내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는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가 영화제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또다른 마케팅의 소산일 것이라 예측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방향은 결국 한국영화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다. 대작영화, 대박영화, 특수효과만을 강조한 영화, 자본으로 승부하는 영화는 양이나 질에서 결국 할리우드영화에 밀리게 되고, 스스로의 색깔을 잃어버리게 된다. 차라리, 영화라는 것의 생존이유를 알려주는 독특한 영화, 저자본 영화들이 많이 살아남을수록 제3세계 영화시장은 더욱 건전해질 수 있다. 영화가 천민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에 발 맞춰 갈 수록, 영화는 예술이라는 장르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비평가들이 디워를 모질게 비판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위기감 때문이다. 돈먹는 공룡이 된 이러한 영화들이 결국 우리나라 영화판을 몰살시킬 것이 틀림없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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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11/24 21:00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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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대 아닌가염? 광대들이 노는 오락거리에서 어느새 자기가 예술이라고 생각하게 되버렸다...
그런데 지나가다님의 정체가 궁금. 저번에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에 덧글쓰셨던 분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