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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잉여존재들-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매번 뉴스에서 가장 화가 나는 존재들이 자칭 어버이회라고 불리는 극우단체 노인들이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각종 쌍욕들과 송연한 저주를 퍼부으며 세상에서 가장 말종들이나 뱉을 단어들을 흘리고 다니신다. 이전에 이글루에서도 나왔지만 지하철에서의 노인들이 벌이는 비상식적 행태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 들어가 가끔 종로에 갈 때마다 마른 동태처럼 눈을 부라리며 소리소리 지르는 노인분들을 보면 그 나이 또래인 부모님이 생각나면서도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아버지와 가끔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잉여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잉여존재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문제는 그 잉여인간들이 삶의 중심에 들어선 이들을 미워하고 상처주길 바란다는 점이다.

그들의 논리는 똑같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에는 노인들의 기억에서 나온 지헤만이 우리의 길이라고...그렇다면 그들의 기억은 도대체 무엇일까? 일제를 경험하고, 수탈을 당하면서도 근근히 삶을 이어가던 그들에게 노예의식이 배겼을 수도 있다. 군사정권하에서 국가주도 개발에 참여하면서 군국주의적 사고는 전혀 변하지 않았고, 6.25와 이후 정권들의 세뇌는 그들의 의식을 근대적인 체계안에 사로잡았다.

선과 악이 분명한 세계는 너무나 살기 쉽다. 변화와 모순과 진보와 윤리라는 골치아픈 주제를 건들지 않고, 좌익 공산당 싫어요의 체계로 들어가면 삶은 너무나 쉽다. 그들의 의식이 고정되다 보니, 그들은 점점 더 시대에서 멀어지게 되고, 점점 더 잉여인간들이 되어간다. 파고다에 죽치고 앉아 매일 술과 싸움질과 고성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치집회나 각종 극우모임은 오히려 생리에 잘 맞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점점 사라져 간다. 그들의 명들이 한계가 있듯이, 그들의 기억들 역시 이제는 과거지사가 되어간다. 온고지신이 아니라 과거를 두고 횡포를 부리는 그들의 폭력들 역시 역사는 조용히 잊어줄 것이다. 다만, 손창섭의 소설에 나오던 잉여인간들이 전두환과 김현중의 만남에서 모순되게 접촉하듯이 80대와 20대에서 공명한다는 점이 서글플 따름이다. 역사는 그래서 모순의 변증인지 모른다.

by 다이몬 | 2010/01/20 22:00 | 트랙백 | 덧글(0)

정말 웃기고 있다. 3권분립이 누구집 강아지 이름이더냐?

할말을 잃게 만든다. 자칭 보수당의 중심세력이라는 이들이 사법부를 흔들고 이념 논쟁으로 몰고 간다. 이것이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던 법치주의던가? 떼법을 운운하던 이들이 이젠 땡깡을 부리고 떼법천지를 이룩하고 사법 테러라도 일으킬 기세이다. 그들의 전위부대들인 검찰들이 물어 뜯을 듯이 달려든 그 동안의 세월동안, 전교조의 교사들은 무죄판정을 받았고, 강기갑의원은 무죄가 선고되었고, 불법시위라는 명목으로 구속되었던 이들이 무죄판결을 받았고, 그들이 북괴의 친위부대처럼 묘사하던 PD들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리나 법치에 어긋나는 죄형꼴리는대로주의의 이들 세력들은 진보라는 명칭만 붙어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듯이 사정없이 물어뜯어왔다. 수많은 촛불들이 끌려가고 얻어맞았다. 국제 인권 위원회의 권고조차 코웃음 쳤다. 날치기를 밥 먹듯이 하고,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자신들의 배알에 맞지 않는 경기도 교육감을 고발조치하는 등 그들의 이념전쟁은 점입가경이다.

그러더니, 이젠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3권분립마저 무너뜨리고, 진정한 독재로 나가려고 한다. 방송을 장악하고, 언로를 장악하고, 빵꾸똥구라는 단어조차 삭제하려는 이 나라의 독재는 이제 사법부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조정하려 한다. 그것이 너희들이 그렇게 주장하던 법치더냐? 니들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다들 좌빨 빨갱이들인가? 법의 판단이 이념에 따라 결딴나야지 직성이 풀리겠는가? 그런 국가가 독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검찰들의 소란이 정말 부끄럽기만 하다.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패싸움같이 여겨진다. 여당의 당수라는 이가 박근혜와 싸우는 꼴도 우습고, 사법부를 흔드는 꼴도 우습다. 제발 그만 웃게 했으면 좋겠다. 이젠 울다 웃다가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그만들 하시지요.

by 다이몬 | 2010/01/20 13:19 | 트랙백(2) | 덧글(1)

그들은 처음부터 권력에만 진지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진지하지 않았나이다. - 좌파에서 뉴라이트로의 전향의 진실

좋은 글 읽었습니다. 예전에 저도 이러한 주제를 한번 다룬 적이 있지만, 좌에서 우로의 전향은 우에서 좌로의 전향보다 너무나 급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결과가 참혹하리만큼 야합의 극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늘 흥미로운 소재였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들은 어느 수업에서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하시던 교수님은 이러한 현상을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극좌와 극우가 서로 상통하는 것, 즉 극단적 맋시스트들과 파시스트들이 상통하게 되는 지점은 권력, 보다 상세하게 말해서 들뢰즈나 니체, 푸코가 말하는 기율권력과 마이크로 정치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했었습니다. 그리고 생시몽과 같은 아나키스트들의 후손들이 어떻게 권력의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었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네오콘이나 뉴라이트의 중추에 있는 인물들의 욕망입니다. 그들의 욕망은 수직적 욕망이었고, 대중을 통제하고,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려는 욕망입니다. 처음부터 그들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던 사회적 저항과 유토피아적 세계관은 결국 자신들의 권력을 미시적으로 넓히고 싶은 욕망과 보다 큰 권력의 중심이 되고 싶은 욕망이 야합되었습니다. 김문수나 이재오와 같은 유명한 케이스들 역시 그들이 절대적으로 믿던 논리의 체계가 소련의 몰락과 더불어 무너지면서 생긴 그 공백을 자신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권력에로의 욕망으로 치환한 것에 불과합니다. 386들 중에서, 특히 급진적인 좌파운동을 하던 학생회장 출신들이 상당수 급진적인 우파로 전향한 것도. 그들이 운동의 단계에서 부터 추구하던 조직화와 권력의 중심에 대한 욕망과 전복을 통한 승리의 도취가 있죠. 사실 그들은 처음부터 들뢰즈의 앙띠 오디푸스에서 푸코가 지적했던 "그들안의 파시즘"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의 네오콘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급진적인 만민평화와 수단보다 목적을 중요시 하던 이들 트로츠키 주의자들은 오히려 그 가능성을 급진적인 기독교 복음주의와 신자유주의에서 찾게 됩니다. 국가를 넘어서 전 세계가 평화로와지는 방법은 하나의 제도가 급진적 공산주의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라고 믿게 되는 것이죠. 어느 하나의 오소독스한 신념체계가 다른 오소독스한 신념체계로 전이하는 것은 욕망의 흐름처럼 너무나 쉽고, 당위와 정당성은 이미 근본적이게 됩니다. 어떠한 반론이나 비판의 요건이 상실됩니다. 전세계 시장의 통합과 슈퍼자본의 가치 우위는 프로레타리아 독재와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인민에게서 나온다는 사상은 근원적으로 모든 것은 개개인의 능력과 자본에서 나온다는 사상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선택받은 세계 혁명전사라는 욕망과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선민들이라는 욕망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 질이 다를 뿐 그 지향은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세계의 중심이 되고 권력의 중심이 되고 그들이 옳았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길 바랬을 뿐 입니다.

68세대 이후의 프랑스의 지성인들이, 그리고 80년대 레이건 이후의 미국에서의 좌파들이 우려했던 것들 역시 바로 이러한 전향이라는 명목의 미시적 파시즘과 그 욕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인민이라는 단어가 군중이라는 단어에 협착되고, 혁명이라는 단어가 권력이라는 단어로 변질되는지를 그들은 목격했고, 그 근원적 욕망에 대한 탐색으로 나아갔습니다. 무페와 같은 이들이 말하는 헤게모니의 탈중심화는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대안이었습니다. 모든 좌파들이 중심이 없이, 중심화 없이, 실체적 권력에 대한 지향 없이, 어떠한 오소독스한 사상적 뿌리가 없이 연대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죠. 페미니즘과 환경운동과 게이 해방과 빈민운동과 같은 무수한 소규모 꼬뮨운동이 중심 없이 연대하는 것 만이, 이러한 권력 지향적 혁명이나 전향을 막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물론, 그 결과로서 나오는 문화운동들의 결과가 그다지 시원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은, 무수한 촛불들과 인터넷 속의 새로운 탈권위적 운동들에 의해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공급받게 되었죠.

노무현의 죽음과 그의 실패가 가지는 의미 역시 이러한 전향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무현은 과연 자신이 추구했다고 사람들이 믿는 진보주의에서 전향을 했을까요? 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통령이 되고나서, 그리고 물러나고 나서 권력과 타협했고, 그 권력의 중추에서 고민했을까요? 그리고 이 문제는 현 정권과도 연관됩니다. 그들은 과연 얼만큼 권력에 집착할까요? 그들이 믿는 새하얀 탈이념과 자본의 무한한 힘의 세계가 과연 유토피아일까요? 그들의 너무나 아름다운 세계의 비젼의 뒤에 있는 비릿한 세포차원의 권력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자뭇 궁금해 집니다.

by 다이몬 | 2010/01/15 19:47 | 트랙백 | 덧글(1)

2009년! 모멘토 모리

2009년이 다 갑니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 예식장과 웨딩드레스까지 예약하고 나니 한국에서의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2009년을 나름 결산해 봅니다.

1. 가장 중요한 사건은 디를 만난 일이었겠죠. 개인적인 일이지만 사회적인 맥락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늘 이야기 하듯, 우리의 사랑은 생활과 사회와 떨어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뒤둥박이며 걸어온 제 인생에 가장 획기적인 만남이었고, 가장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 기억납니다. 평생의 동지로서, 친구로서, 애인으로서, 그리고 가정의 파트너로서 사람살이를 같이 할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디에게 늘 감사합니다. 디의 가족들도 마찬가지고요.

2.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회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저의 사유의 계열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죠.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이후의 철학을 고민했다면, 저는 노무현 서거 이후의 사유가 얼마나 달라졌을지 고민해 보고 있습니다. 한 사회의 비젼을 공유하던 어떤 지도자의 충격적 결말은 너무나 부조리하고 시적이기에 너무나 충격적이면서도 제가 몸담을 지식 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고민거리이죠. 지지율이 50퍼센트가 되셨다고 자랑하시는 그와 그 세력들이 독식하는 헤게모니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 자체가 직면하는 가치관의 혼란을 걱정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살아있을 때는 미지근한 노빠였지만, 이제 죽은 시체를 두고 강성 노빠가 되는 듯한 제 자신이 처량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기억하는 자에게 희망이 남을 것이라고 봅니다. 역사는 흐르지만, 진리는 흐르지 않습니다.

3. 용산참사와 촛불들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300일이 훨씬 넘은 이 시점에 해결이라는 사탕발림을 떠벌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건이였고, 대한민국이 왜 80년대의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동녁의 차가운 바람들을 뚫고 들려오는 이 이야기들은 시대의 윤리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윤리의 근본에 자리잡은 사람살이에 대한 고민을 더욱 해 보게 되었습니다. 2년 연속 참여한 촛불들의 희망과 좌절 역시 2009년을 마무리하며서 고민해 봅니다. 다중 지성과 직접민주주의가 다시 한번 이슈화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어보고, 이 담론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찬찬히 살피려 합니다. 

4. 개인적으로 라이팅 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여러 재미있는 상황속에서 그래도 잘 버텨왔다는 것에 감사를 해 봅니다. 외국인으로서 드문 케이스였기 때문에 저의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공유되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미국인들의 편견도 보았고, 그에 좌절해 보기도 했습니다. 중국학생들의 불신에 직면해 보기도 했고, 외국인으로서의 한계도 느껴봤지만, 이 모든 것이 저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와서 회화가 가장 많이 필요했던 시기이기도 했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의 끈끈한 정도 느껴봤고, 무엇보다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던 경험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청강과 일을 왔다갔다 하다 보니 종합시험을 통과하고도 논문에 별로 진전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좀 더 열심히 해야겠죠. 2010년은 논문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5. 아무튼 이러구러 시간이 흘렀고 또 한해가 지났습니다. 이제 아저씨에게 중년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지 약간 서글퍼지면서도, 이제 새롭게 맞게 될 나만의 가정이라는 공동체에 기쁨과 더불어 더욱 확고한 자세를 잡아 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디와 가족들과 친구들의 행복을 다시 한번 기도해 봅니다.  

by 다이몬 | 2009/12/31 07:30 | 트랙백 | 덧글(0)

결혼

한국에 도착하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제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오늘 결혼식장을 잡게 되다 보니, 결혼이라는 예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결혼은 무엇일까요? 그저 양가가 합쳐지는 사건일까요? 아니면 두 남녀가 법적으로 같이 살게 되는 하나의 의식에 불과할까요? 아마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던 두 사람이 서로의 삶에 대해 평생 같이 공유하겠다는 계약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이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서약을 맺는다는 의미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평생 그 사람을 만나 같이 산다는 것에 의미를 두게 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서약이겠죠. 사랑하는 디의 아버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결혼은 생활이 전제된 사랑의 시작이고, 그 시작에 대한 신성한 서약이 결혼식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평생 생면부지이던 어떤 이들에게 아버님, 어머님을 부를 수 있게 되는 의식이기도 하고요. 어쨋든, 한국에 잠깐 들려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냅니다. 피로로 인해 아픈 디가 어서 아프지 않기만을 기도해 봅니다. 행복합니다. 사랑해! 디!

by 다이몬 | 2009/12/18 03:51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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