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100만 비석리본 달기 캠페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은 이글루의 쟁론들

이글루의 목적이 무엇일까? 겨울의 차가움을 눈으로 막아내는 에스키모의 지혜에서 나왔을까? 이글루라는 블로그에서 글을 쓴지도 벌써 5년이 되어간다. 그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꽤 많은 글들을 흥미롭게 본다. 다중지성이라는 이제는 옛용어로 표지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진 블로그라는 환경에 매력을 느낀 것은 솔직히 내 글에 대한 반응이라기 보다 수 많은 백가쟁명식의 글실(thread)의 단편들이 어떠한 총체성을 지닐거라는 내 나름의 가설에서 출발한다.

노무현의 탄핵 때도 그랬고, 촛불 때도 이글루는 좌글루스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블로그의 총체성을 여실히 드러냈고, 서로 다른 의견이라 할지라도 이빨을 세울 지언정 의미없는 씨부림이 있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오공감 역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어떤 논점들이 모일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줘 왔다. 그런데, 최근들어 이글루의 논의들이 산으로 가는 꼬락서니를 지켜보게 된다. 대표적으로 처녀논쟁과 같은 것들이 있다.

디씨에서나 보이던 글들이 줄줄 흐르더니 마초도 아닌 마초들이 들끓었고 페미도 아닌 페미들마저 반기를 들었으며, 원초적 흥미에 매몰된 논의는 혼전순결을 하나의 과로 만든 어느 기독교대학의 absurd한 모습처럼 유치하게 변질되었다. 비단 처녀논쟁 뿐 아니다. 노무현의 서거에 대한 추모글들 속에서 간간히 보이던 일명 개념글들 마저 하나의 시대정신을 읽고 저항에 대한 진지한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 많은 눈물속의 한방울로 그치게 되었다.

그렇다고 어떠한 총체적 단결성을 요구하는 것은 블로그의 속성과 맞지 않는다. 다양하고 의미있는 대결들과 쟁론들이 넘쳐나는 것이 블로그의 맛이다. 더구나 일기장과 기사의 중간지점에 있는 블로그의 속성상 똘레랑스는 이상이고 쟁론은 현실이며 찌질함은 부가적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글들이 공감을 얻고 개인적인 분노가 논쟁으로 이끌어지는 것 역시 옳은 현상이다. 다만, 점점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닌 수준 없는 이야기들이 줄을 잇고 이명박식 소통이 넘쳐나며, 대한 늬우스만큼이나 슬픈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것은 다소 슬프다.

스스로를 글쟁이로 생각하던, 유명인사로 생각하던, 아니면 진모모와 같이 오랑캐들 무리속의 이순신과 같다고 진짜 믿던 말던, 우리는 적어도 시원하지도 덥지도 않은 시덥지 않은 글줄은 좀 삼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럼 너는 뭐냐고 하면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가뜩이나 이 정권 들어서 대한민국의 수준이 낮아지고 있는 판국에 우리라도 좀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by 다이몬 | 2009/07/05 10:33 | 트랙백 | 덧글(1)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그럼 쥐는 두 다리로 뛰나?

새는 당연히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정치적으로 left wing과 right wing이라는 개념을 교묘하게 잘 이용한 명저의 제목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지당한 말이다. 더구나 좌우의 대립으로 분단과 독재와 민주화와 또다른 독재를 맞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이보다 더 이상적인 문구는 없을 것이다. 좌우는 합작을 하든 합의를 하든, 이 문구 속에는 상대방의 사상에 대한 블떼르의 유명한 똘레랑스, 파리 바게뜨보다 더 유명한 똘레아스에 대한 가장 유토피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새는 두 날개로 날 수 있지만, 쥐는 다리가 적어도 3개는 넘어야 걸을수가 있고, 지네는 다리가 수십개는 되어야 기어다니며, 뱀은 다리가 있으면 사족이 된다. 현실은 새들의 세계라기 보다 쥐들과 지네들과 뱀들의 세계이다. 사안에 따라 어떤 경우는 좌도 우도 의미가 없을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제3,제4의 이념적 지형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권은 전통보수정권도 진보도 아니다. 실용이라는 것으로 치장된, 좋은 말로 자본권력이고 나쁜 말로 하면 개념도 비젼도 없는 정권이다. 이념을 혐오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는 사실 솔직한 말이다. 그는 진정으로 이념이 뭔지 좌우가 뭔지 정치적 비젼이 뭔지 왜 정치라는 게 존재하는지 전혀 모른다. 결국 새의 좌우날개 이야기는 그가 최근에 한 중도이념과는 도저히 맞어들어갈 수 없다. 다른 한 예로 박정희는 많은 이들에게 조선시대의 왕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조갑제를 비롯한 우국열사들에게 박정희는 좌도 우도 아니다. 반대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친일파일 뿐, 보수라고 볼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이념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노무현은 북유럽식 사민주의에 대한 뜻을 비추기는 했지만, 결국 신자유주의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그가 주창한 대연정처럼 그의 이상은 해외와 책들 속에서 위대했지만 현실성은 사실 많이 빈약했다.

현실에서 좌우의 상존이라는 것은 협잡이 되거나 잘 해봤자 야합으로 그치고 있다. 왜 그럴까?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공존하는 특이한 역사성과 분단과 4강세력들의 영향력이 좌지우지하는 geopolitics(전지구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왔기 때문일수도 있고, 근원적인 민족성이라는 허울좋은 명분 때문일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의 정치지형은 좌와 우라기 보다 조선시대의 양반제, 일제시대의 친일파, 독재시절의 신토호세력들, 그리고 명목상의 민주화이후의 강남등에 몰려사는 신흥상류층들이 한 축을 이루고, 그 반대편에는 백성, 민중, 서민이라는 애매모호한 명칭으로 일컬어지는 계급아닌 계층들이 모여 있다. 물론, 후자가 그 수는 훨씬 많다.

더구나 이념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서구식의, 특히 영미권의 보수와 진보라는 틀거리가 잘 들어맞지 못한다. 감세와 복지, 자유와 평등, 경쟁과 공평함, 기존질서의 수호와 질서의 전복을 요구하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독재시절의 명확한 독재와 반독재, 파쇼와 반파쇼라는 틀마저 잃어버리고, 변절한 민주세력과 진보적성향의 정권 10년을 지켜낸 어떤 이들과 기득권과 탈이념을 부르짖는 시장친화적 신흥 기득권 세력들이 혼재해 있으며, 이도저도 아닌 우리가 흔히 부르는 기층서민들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이념의 자연 속에서 쥐는 다리가 네개로 뛰어다니고, 뱀은 다리도 없이 기어다니고, 벌레는 무수한 다리로 잘도 다니고 있다. 다중지성을 부르짖는 쪽에서 좌우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을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온라인상의 리좀이라는 폼나는 이론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어떠한 이념 구조로서의 현실 파악은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바로 이러한 구조의 무효성 때문에 이명박 정권은 스스로를 개혁정권이라고 지칭할 수 있고, 국제 엠네스티의 객관적 보고서에도 콧웃음을 칠 수 있으며, 서민들이 자신들을 몰라준다고 징징 댈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념이 사라지고, 탈이념의 그들만의 유토피아가 아마겟돈 이후의 천년왕국처럼 도래했을까?  구조만 사라졌을 뿐 그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더욱 첨예하고 더욱 복잡해 졌으며, 더욱 정서화되었다. 노무현의 서거는 기존 진보세력, 중도세력, 정치무관심 세력, 정서적 동감세력등등을 모두 모았으며, 그 안에 꼴패미, 꼴마초, 잔반들, 노숙자, 인권운동가, 감옥의 재소자들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이루는 어떤 화려한 색채들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념은 동물의 다리나 날개로 설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념은 인상파 화가의 강렬한 색채들과 같다. 아니면 갖은 양념이 들어간 일상의 음식과도 같다. 매일 우리가 소비하고 매일 우리가 보는 이러한 이념의 지형은 차라리 우리의 마음의 복잡미묘함을 닮았다.

우리 사회는 분명 이념의 충돌속에 있다. 게이들을 혐오하는 진보세력도 있고, 이명박정권을 극도로 혐오하는 보수인사도 있다. 극우세력이 친북을 하기도 하고, 극좌세력이 극우로 전향을 발가락 꼼지락하는 것보다 편하게 하고 있다. 중도개혁이라는 색깔도 누르팅팅한 인사들이 있는가 하면, 중도보수라는 푸르죽죽한 인사들도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좌도 우도 아닌 이념의 비빔밥, 혹은 개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이제 동물(새나 쥐)과 이념의 이야기는 이 정권으로 끝냈으면 하는 소망을 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by 다이몬 | 2009/07/02 08:03 | 트랙백 | 덧글(1)

가카의 떡볶기 서민

연일 서민이다. 친서민적 정책을 남발한단다. 서민들을 위한 정권인데 사람들이 잘 몰라준다고 투정이다. 떼쟁이도 아니고 '우리는 서민이유'라고 떼부리는 것은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봐주겠다. 서민이 영어로 뭘까? people?일반적으로 인민이라고 번역되는 people이 서민이 될 수는 없다. lower class라고 봐줄 수도 있고 blue color도 서민의 일종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막스적 개념으로 프롤레타리아는 더더욱 아니다. 우리나라의 서민은 국민과 마찬가지로 실체는 없지만, 늘 존재하는 감성적 지시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민은 때로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온다. 진정으로 친서민적인 대통령이자 한 인간이던 노무현의 죽음이 우리에게 끼쳤던 어떤 공감 역시 서민적이라는 타이틀과 연관이 되어 있다. 우리 가카는 서민이라고 부르짖으신다. 그러면서 어릴 적 가난하게 고학생으로 공부했던 시절을 말씀하신다. 그가 정서적 개념인 서민이었던 적은 아마 20대 이전일 것이다. 누구나 알듯이 고대 총학생회장을 하시던 가카는 이미 서민이 아니셨고, 현대건설의 사장이시던 가카를 서민이라고 아무도 부를 수 없다. 그는 권력자였고 기득권이었으며, 잘나가는 사장이었다. 정확하게 얼마인지 알수도 없는 재산을 소유하시고, 큰 형이 국회의원 6선이나 하신 분이 서민이라는 탈을 쓰시려고 무척 노력하는 것이 가관인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가식이다. 적어도 진짜 서민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문제는 이 정권의 어떠한 꼼꼼하지 못한 노림수 때문에 시작된다. 그들에게 서민은 좌파 지식인들이나 386세대들을 통째로 빼고, 우파이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어떤 세력들의 집토끼 모으기의 개념적 통일체가 서민이 되었다. 적어도 그들에게 노무현이나 김대중에 동조하는 이들은 서민이 아니다. 아니, 국민도 아니다. 그저 척결하고 싸워야 할 적들로 비춰지고 있다. 그들은 해임되어도 무조건 대통령을 존경하고, '쥐박이'등의 상스러운 표현에 휘둘리지 않는 그런 서민들을 원한다. 그 서민들은 촛불도 들지 않고 미국산 소고기도 가카께서 안전하다고 하시니 배터지도록 먹어주는 서민들이다. 그 서민들은 시장에서 떡볶기를 파는 정권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아주 순수하고 마음 착하고 정치의식도 없고 그저 가카를 왕처럼 모셔주는 서민들이다.

그 서민이 되지 못하는 시국선언을 하는 교수들이나 공무원이나 전교조나 진보 지식인이나 한예종학생들이나 촛불집회 참석자들이나 노무현의 서거를 슬퍼하는 이들이나 쌍용차에서 생존을 위해 목소리를 높히는 노동자들이나 삶의 벼랑에서 이 나라 정권의 친기업정책들에 울부짖는 이들이나 국가의 장래를 위해 연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김대중과 그 지지자들이나 서민이 아니다. 우리편이 서민이라는 이 의식에는 말없는 다수가 그들의 편일 거라는 안일한 생각도 끼어 있다. 동네 슈퍼마켓 아저씨들이 무조건 자기들 편일 것이라는 환상, 돈 없고 빽없고 힘없는 민중들이 자신들의 서민일 것이라는 환상, 경제만 살면 정치야 어떻든 민주주의야 다 쓰러지던 어쨋든 관심이 없을 거라는 환상, 그것이 지금 정권의 핵심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그렇게 나이브하고 자기당착적인 서민의 논리가 먹힐까? 인터넷 댓글들이 그 논리에 대한 반응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서민이 조중동의 사장들과 기자들이고 검사들이며 대기업 회장들임을 우리는 안다. 그들은 강남의 수천억대 부자들이 서민이다. 아니면, 노무현의 영정을 짚밟던 우파들이 서민이고 뉴라이트가 서민이다. 대한민국 서민은 그렇게 규정이 되어버렸다. 진짜 서민들이 동의를하던 안하던 말이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은 더욱 힘들어지고, 삶은 팍팍해지고, 부자들의 세금은 감세가 되고 서민들의 생활은 더욱 퇴락하고 있다. 그들의 서민은 그들만의 시대정신이며, 그들만의 세계주민이다. 난 그런 세계 주민이 되고 싶지도 될수도 없음이 차라리 즐겁다. 가카의 떡복기 서민들을 위하야~~~

by 다이몬 | 2009/06/27 07:04 | 트랙백 | 덧글(1)

순망치한- 조중동과 엠비 정권

연일 우울하고 짜증나는 기사들만 나온다. 결국 이 정권은 피디수첩이라는 일개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고 노무현 때와 마찬가지로 검찰이라는 충실한 프랑케슈타인들을 대거 동원해 이념 전쟁을 다시 시작했다. 노무현의 국민장이 끝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운전사를 잡아가고 노천극장에서의 추모공연마저 거부된다고 한다. 철저한 보복이자 철저한 통제이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검찰의 서슬퍼런 죽은 권력 다시 죽이기와 진보세력 때려잡기로 살아난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 경기 회복의 영향으로 조금 살아나는 경제를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며 의기양양해 한다. 더구나 결국 북한의 뻘짓은 이 정권이 기사회생하는데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시대가 이러다 보니, 투쟁은 더욱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소수자들과 없는 자들의 희생을 무한대로 요구하는 이 정권은 감세정책과 각종 이권들로 있는 자들의 지갑을 더욱 두텁게 하고, 각종 복지제도의 축소와 눈에 띄게 삭막해진 공권력으로 사회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어느 독재정권에서든 쉽게 보던 모습들이다. 결국 우리의 민주주의는 80년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전직 동아일보 기자이신 대변인은 대통령한테 한 욕도 방송되는 세상이 얼마나 민주화된 것이냐며, 비논리적인 논거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한다. 대통령을 비판하던 미네르바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일어난 이들에는 전혀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종 정책들의 뒤에는 물론 조중동의 사활을 건 투쟁이 있다. 마치 마인 캄프라도 연상시키는 이들의 극렬한 이념투쟁은 결국 자기 밥그릇 싸움인 것은 분명하다. 방송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이념을 국민들에게 세뇌시키려는 이들 언론들의 극렬한 대응은 사실 그들 존재의 그늘에서 비롯된다. 그들이 지키려는 기득권과 친일, 친미의 역사를 다시 한번 세우려는 시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권과 조중동은 정말로 순망치한의 논리로 빠져들고 있다. 입술인 조중동이 없으면 이 정권은 춥다. 적어도 조중동이 노무현에 대한 기사들에서 보여줬듯이 제대로 떠들어 줘야 이 정권이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입들이 하도 병들고 썩어서 더 이상 정권의 비호조차 못할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점점 국민들의 의식에서 멀어지는 이들 언론들은 그들이 대표하는 대한민국 30퍼센트의 권리만을 부르짖다가 결국 소수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따듯한 여름철이라 바람이 불어도 입술이 춥지 않지만, 이빨도 성치 안은데 겨울이 다가오면 입술이 곪아 터지고 피가 흘러 결국 잇몸까지 곪아 터질지 모른다. 노무현 서거 이후 적어도 이들 입술들이 한 짓거리들을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속에 가득찬 분노와 증오는 이들 입술들이 언제까지 짖고 까불어댈지 예상치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by 다이몬 | 2009/06/19 16:28 | 트랙백

쪼다 극우단체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90617150206459&p=newsis

한참 웃었다. 자칭 지식인이라는 이들이 쓴 글을 또 울궈먹었다는 것이 그들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 극우지식인들이나 인사들의 한계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곤조만 있고 대화가 없으며, 지하철에서 자리 양보하라고 떠들어대는 꼰대 이상도 이하도 못된다. 김동길이나 이 선언에 참여했다는 목사들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이들의 유일한 논리적 맥락은 북한이다. 북한을 씹어 먹어 버리고 싶은게 이들의 유일한 욕망이다. 따라서 북진통일이라도 서슴없이 해야한다는 이들의 마인드는 위험하기 그지없다. 대부분 노년을 보내는 이들이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나오는 것은 그들 마음속의 공포심 때문이다. 그들은 사라져간다. 반공웅변대회에 감동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 세대는 결국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노인구국단은 새로운 세대들과 그들의 반대편에 위치한 김대중이나 노무현을 이길 수 없다. 엠비는 그들에게 별로 관심도 없다. 엠비는 말 그대로 장사꾼 정신이다. 이득을 쫒을 뿐 이념이나 노선은 없다. 그에게 북한은 귀찮은 대상일 뿐 강한 군사력으로 제압할 대상이 못된다. 그것이 이 정권의 정체이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현대건설 사장이었고, 일 것이다.

그들은 박정희의 귀환을 원한다. 그들은 대국민 정신개조와 자신들의 친일,친미경력의 미화를 원한다. 그들은 좌빨이라는 이념을 대상으로 만들어넣고 우물거리는 입으로 씹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귀찮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것이 그들의 한계이다. 결국 그들은 천박한 지성으로 북소리만 울리다 사라질 것이다. 좀 서글프긴 하다.

by 다이몬 | 2009/06/17 18:16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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