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당연히 좌우의 날개로 난다. 정치적으로 left wing과 right wing이라는 개념을 교묘하게 잘 이용한 명저의 제목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지당한 말이다. 더구나 좌우의 대립으로 분단과 독재와 민주화와 또다른 독재를 맞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이보다 더 이상적인 문구는 없을 것이다. 좌우는 합작을 하든 합의를 하든, 이 문구 속에는 상대방의 사상에 대한 블떼르의 유명한 똘레랑스, 파리 바게뜨보다 더 유명한 똘레아스에 대한 가장 유토피아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그러나 새는 두 날개로 날 수 있지만, 쥐는 다리가 적어도 3개는 넘어야 걸을수가 있고, 지네는 다리가 수십개는 되어야 기어다니며, 뱀은 다리가 있으면 사족이 된다. 현실은 새들의 세계라기 보다 쥐들과 지네들과 뱀들의 세계이다. 사안에 따라 어떤 경우는 좌도 우도 의미가 없을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제3,제4의 이념적 지형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권은 전통보수정권도 진보도 아니다. 실용이라는 것으로 치장된, 좋은 말로 자본권력이고 나쁜 말로 하면 개념도 비젼도 없는 정권이다. 이념을 혐오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는 사실 솔직한 말이다. 그는 진정으로 이념이 뭔지 좌우가 뭔지 정치적 비젼이 뭔지 왜 정치라는 게 존재하는지 전혀 모른다. 결국 새의 좌우날개 이야기는 그가 최근에 한 중도이념과는 도저히 맞어들어갈 수 없다. 다른 한 예로 박정희는 많은 이들에게 조선시대의 왕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조갑제를 비롯한 우국열사들에게 박정희는 좌도 우도 아니다. 반대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친일파일 뿐, 보수라고 볼수가 없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이념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노무현은 북유럽식 사민주의에 대한 뜻을 비추기는 했지만, 결국 신자유주의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그가 주창한 대연정처럼 그의 이상은 해외와 책들 속에서 위대했지만 현실성은 사실 많이 빈약했다.
현실에서 좌우의 상존이라는 것은 협잡이 되거나 잘 해봤자 야합으로 그치고 있다. 왜 그럴까?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는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공존하는 특이한 역사성과 분단과 4강세력들의 영향력이 좌지우지하는 geopolitics(전지구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왔기 때문일수도 있고, 근원적인 민족성이라는 허울좋은 명분 때문일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의 정치지형은 좌와 우라기 보다 조선시대의 양반제, 일제시대의 친일파, 독재시절의 신토호세력들, 그리고 명목상의 민주화이후의 강남등에 몰려사는 신흥상류층들이 한 축을 이루고, 그 반대편에는 백성, 민중, 서민이라는 애매모호한 명칭으로 일컬어지는 계급아닌 계층들이 모여 있다. 물론, 후자가 그 수는 훨씬 많다.
더구나 이념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서구식의, 특히 영미권의 보수와 진보라는 틀거리가 잘 들어맞지 못한다. 감세와 복지, 자유와 평등, 경쟁과 공평함, 기존질서의 수호와 질서의 전복을 요구하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독재시절의 명확한 독재와 반독재, 파쇼와 반파쇼라는 틀마저 잃어버리고, 변절한 민주세력과 진보적성향의 정권 10년을 지켜낸 어떤 이들과 기득권과 탈이념을 부르짖는 시장친화적 신흥 기득권 세력들이 혼재해 있으며, 이도저도 아닌 우리가 흔히 부르는 기층서민들이 존재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이념의 자연 속에서 쥐는 다리가 네개로 뛰어다니고, 뱀은 다리도 없이 기어다니고, 벌레는 무수한 다리로 잘도 다니고 있다. 다중지성을 부르짖는 쪽에서 좌우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을 이야기하지만 이 역시 온라인상의 리좀이라는 폼나는 이론의 한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어떠한 이념 구조로서의 현실 파악은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바로 이러한 구조의 무효성 때문에 이명박 정권은 스스로를 개혁정권이라고 지칭할 수 있고, 국제 엠네스티의 객관적 보고서에도 콧웃음을 칠 수 있으며, 서민들이 자신들을 몰라준다고 징징 댈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념이 사라지고, 탈이념의 그들만의 유토피아가 아마겟돈 이후의 천년왕국처럼 도래했을까? 구조만 사라졌을 뿐 그 자체가 사라지진 않았다. 오히려 더욱 첨예하고 더욱 복잡해 졌으며, 더욱 정서화되었다. 노무현의 서거는 기존 진보세력, 중도세력, 정치무관심 세력, 정서적 동감세력등등을 모두 모았으며, 그 안에 꼴패미, 꼴마초, 잔반들, 노숙자, 인권운동가, 감옥의 재소자들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이루는 어떤 화려한 색채들 속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념은 동물의 다리나 날개로 설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이념은 인상파 화가의 강렬한 색채들과 같다. 아니면 갖은 양념이 들어간 일상의 음식과도 같다. 매일 우리가 소비하고 매일 우리가 보는 이러한 이념의 지형은 차라리 우리의 마음의 복잡미묘함을 닮았다.
우리 사회는 분명 이념의 충돌속에 있다. 게이들을 혐오하는 진보세력도 있고, 이명박정권을 극도로 혐오하는 보수인사도 있다. 극우세력이 친북을 하기도 하고, 극좌세력이 극우로 전향을 발가락 꼼지락하는 것보다 편하게 하고 있다. 중도개혁이라는 색깔도 누르팅팅한 인사들이 있는가 하면, 중도보수라는 푸르죽죽한 인사들도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좌도 우도 아닌 이념의 비빔밥, 혹은 개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이제 동물(새나 쥐)과 이념의 이야기는 이 정권으로 끝냈으면 하는 소망을 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