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9일
레비나스를 비롯한 근대, 혹은 탈근대의 많은 철학자들은 아우슈비츠를 하나의 전기로 본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철학의 불가함을 논했고, 레비나스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유럽에 더 이상의 전통적 윤리의 불가함을 논했다.
대한민국에서 박정희와 친일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이유인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는 식민과 친일, 군사 쿠테타와 독재라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장본인이자 하나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철학과 그 이전의 사유가 그가 집권하고 육신이 환락 가운데에서 사라졌던 그 사건 (event) 이후의 철학과 사유와 같을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박정희는 세 가지 문제점을 남겼다. 성공한 쿠테타는 정당한가라는 문제와 친일이 어디까지 용인되어야 하는가와 죽은 독재자가 어떻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가라는 점에서 이다. 이 세가지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분명히 관계가 되어 있고, 우익들의 절규와도 관련이 있다. 친일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류들에 대한 저항이며, 쿠테타를 부정하는 것 역시 대한민국의 과거 지배세력들에 대한 부정이고, 독재자를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과거의 비민주적 통치에 대한 부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박정희는 죽을 수 없는 상징이며, 죽을 수 없는 담론이다. 그의 친일이 용인되고 숭고하게 여겨진다면, 우리는 일제시대를 대한제국과 근대의 발생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극우 세력들이 주장하는 일제시대의 근대화에 대한 논의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무지몽매한 조선민중을 식민시대를 통해 계몽시킨 자랑스러운 천황폐하께 감사기도를 올려야만 한다. 그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만일 그의 쿠테타가 성공한 것이고, 따라서 역사적으로 정당화된다면, 우리는 이후의 모든 성공한 쿠테타 역시 인정해 줘야 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구별이 용인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공한 쿠테타는 그들의 꿈이고 그들의 혁명이기 때문이다. 어느 의미에서 극우 세력들은 나약하다. 그들은 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 그들이 유일하게 기댈만 한 혁명의 방법은 군사정권과 같은 무시무시한 방법 뿐이다. 노무현 탄핵과 복귀 당시에 쿠테타를 운운하던 그들의 논리가 거기에 있다. 그들은 제2의 제3의 박정희를 기대하고 다시 만들려 한다. 그 역사의 순환을 기대하기에 그들은 박정희의 군사쿠테타가 성공한 쿠테타여야 한다.
세째로, 결국 문제는 대한민국의 주류와 지배세력이 누구였는가와 관련이 된다. 영남에 편파적이었던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이념 지형을 지역의 분열로 만들었고, 세대간의 대립의 틀을 만들었다. 박정희시대를 살고 박정희에게 세뇌당한 세대들은 박정희라는 이름에 담긴 그들의 근대화에 대한 로망과 담론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 근대화의 영웅들은 박정희의 신격화가 그들의 인생의 가장 활동적이던 그 시대와 상통된다고 본다. 적어도 그들에게 무수한 대한민국 청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베트남 파병과 전통적 커뮤니티의 파괴와 근대화의 각종 부작용을 부른 박정희식 계획 경제 발전이 그들의 시대를 물화시키며 신화화시키기 때문이다. 엠비가 끝없이 자신의 과거 근대화의 경험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결국 박정희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그 시대의 상징이며, 그의 시대를 살던 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우리가 모두 그를 잊게 되는 순간까지 절대로 논의가 끊이지 않을 인물이다. 그에 대한 평가는 결국 대한민국의 가장 암울했던 시절, 혹은 그들에게 가장 찬란했던 시대에 대한 평가와 관련이 있다. 극우 세력들이 박정희를 부정하는 이들을 아비를 팔아먹고 과거를 부정하는 호로새끼들로 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와 시간은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차차 가라앉을 것이다. 그들과 같은 신화를 공조하는 우파청년들로 인해 논쟁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박정희와 더불어 자신들의 삶을 보상받으려는 세대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것도 하나의 역사의 흐름일 것이다. 이 시대를 사는 이들이 노무현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말이다.
# by 다이몬 | 2009/11/09 06:32 | 트랙백 | 덧글(0)